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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외국인인가, 점령자인가…동화 같은 이집트관의 난센스 [베니스 비엔날레 2024]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리뷰 ② 이집트관

우라비 반란 역사서술 재해석
‘아름다운 영상미’라는 난센스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영상 3

[헤럴드경제(이탈리아 베니스)=이정아 기자] “우리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임수는 아흐메드 우라비를 무너뜨렸습니다.”

과하지 않게 살짝 넣은 반음(半音)과 왈츠풍의 3박자, 누구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단순한 멜로디,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는 화면 구도, 파스텔톤 색감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아름다운 배경. 지난 20일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동화 같은 영상 화면이다.

그런데 영상 속 인물이 전하는 노랫말만큼은 현실적이고 적나라하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외국인(Foreigner)’이 내포하는 의미를 교묘하게 전복하겠다는 듯, 서사 구조 곳곳에서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장치들이 발견된다.

100m가량의 긴 줄이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 바깥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 [베니스=이정아 기자]

이집트관에서는 19세기 후반 영국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내동댕이쳐진 이집트의 시대상을 짙게 응시하게 하는 뮤지컬 영상 ‘드라마(Drama), 1882’가 상영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미국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작가 와엘 샤키(53)의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이집트의 ‘우라비 반란(1879~1882년)’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관계된 제작진만 400여 명에 달한다.

VIP 사전 관람(프리뷰) 기간에 만난 작가는 “외국인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오늘날 외국인의 사전적 의미는 ‘국외자’를 말하지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외국인은 서구 주류 역사에서 배제된 ‘탈(脫)백인’을 지칭하는 ‘이방인’을 뜻한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제시한 개념에는 ‘점령자(Occupier)’라는 의미도 내포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작품명에서 드러나는 1882년은 영국이 수에즈 운하 보호를 이유로 이집트를 장악한 해다. 앞서 이집트의 군 장교인 우라비 대령은 영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이집트 내각의 수뇌가 됐다. 이에 영국은 합법적 질서를 회복한다는 구실로 이집트에 출병했다.

영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우라비를 쉽게 진압했다. 이를 계기로 이집트는 40년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그렇게 영국은 세계 해상 패권을 잡았다.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범선의 항해는 석 달이 걸리지만,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증기선은 단 3주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집트관에 설치된 와엘 샤키의 작품 ‘드라마, 1882’(2024). [스파이어 셀머 갤러리·리슨 갤러리·리아 룸마·바라캇 컨템포러리]

영상에서는 우라비에게 권력을 뺏긴 이집트 군주가 우라비를 ‘반역자’라고 부르는 반면, 정작 자국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영국인을 ‘외국인’으로 지칭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라는 단어도 오락이자 재앙,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본질적인 의심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쓰였다.

이러한 단어들이 극단적인 경우엔 난센스,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화면에서 그 뜻이 어떻게 풀이되느냐에 따라 해석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실제로 누가 이야기를 쓰느냐에 따라 우라비는 영웅이 될 수도, 반대로 반역자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45분에 달하는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영상을 시청하는 관람객이 대다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상 흡입력이 상당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이집트관 앞에는 100m가량의 긴 줄이 매일같이 늘어섰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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