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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2020년판 해저2만리

니모 선장이 설계한 노털러스호는 잠수함이다. 향우고래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크기에다가 강한 충각(衝角·함수 밑 돌출부분)까지 갖춰 고래 뿔처럼 무시무시한 공격력도 갖췄다.

이 잠수함의 진짜 비밀은 동력. 전기 잠수함이다. 바닷물 속 나트륨과 해저탄광에서 조달한 광물로 전기를 자체 생산한다. 이 잠수함이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니모 선장은 치켜세운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쥘 베른의 대표작, ‘해저2만리’엔 전기잠수함 노털러스호가 나온다. 전 세계를 떨게했던 해저 괴물의 정체는, 50노트라는 당시로선 상상 못할 속도로 이동하는 전기 잠수함이었다. 최근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이 명작은, 어릴 때와 또 다른 경이로움을 준다. 가장 놀라운 건 출간 연도다. 1869년. 전기가 막 발명됐을 시기, 쥘 베른은 전기로 움직이는 잠수함을 상상했다. 150년 전에 말이다. 그 거침없는 상상력은 이제야 보이는 이 책의 진가다. 150년 뒤, 우린 전기 자동차를 타고 있다. 이 책은 그저 모험소설이 아니다. 꿈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꿈’이 요즘 화두다. 해저2만리처럼 소설이 아닌 진짜 우리 인생에서 말이다. 주식시장 얘기다. 전통적 사고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배경엔 꿈이 있다. 아니, 꿈을 판다. 마치 2020년판 해저2만리를 보는 것 같다. 수소트럭 한 대도 생산하지 않은 수소트럭업체 니콜라가 주식시장에선 포드를 뛰어넘었다. 니콜라에 비하면 양산에 돌입한 테슬라는 훨씬 현실적이다.

SK바이오팜은 이제 직원 퇴사까지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역대급 주가 과열에 우리사주 직원들은 평균 20억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다. 1년 기다릴 바에 지금 퇴사해서 챙기자는 유혹이다.

SK바이오팜에 투자했다는 한 지인에게 투자 이유를 물었다. 그의 ‘꿈풀이’다. “좋은 회사다. 대기업 계열사다. 신약 개발한 바이오 대표주다. 뇌전증치료제가 유명하다.” 그래서 뇌전증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모른단다. ‘간질’은 알지만 ‘뇌전증’은 모르는, 하지만 꿈을 좇아 일단 ‘영끌’로 투자했단다.

최근엔 한 증권사에서도 ‘꿈’에 투자하는 시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보고서를 내놨다. 더는 전통적 투자지표가 아닌, 차라리 꿈을 추종하자는, 자조 섞인 보고서다. SK바이오팜을 비롯, 소위 고평가 논란이 인 종목들은 증권가 리포트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 애널리스트를 만나면 보고서가 두렵다고 한다. 목표주가를 비웃듯 주가가 이상 급등하니 말이다. 갈 곳 잃은 역대급 유동성이, 그저 꿈처럼 쏠려 다닌다. 실적과 수치로 반론하면, 이건 꿈이지 않느냐고 대꾸한다. 그러니 이젠 증권가마저 꿈을 지표 삼아 투자하라 한다.

만약 해저2만리가 전기잠수함 제작을 선언하는 기업설명서였다면? 바닷물과 해저 탄광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겠노라는 사업계획서였다면? 차라리 1869년이 아니라 2020년에 등장했다면, 아마 역대급 투자금이 쏠렸을 지 모를 일이다(쥘 베른도 작가 이전에 실제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말 되는 상상처럼 그럴듯 해지는 요즘이다. 꿈은 결국 깨니까 꿈이다. 증권가마저 포기하진 말길. 홍길동도 아니고, 꿈은 꿈이라고 말 못 하는 현실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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