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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의 오지랖] ‘데스노트’ 정의당, 어쩌다 ‘자충노트’ 둬 추락을 자초했나
뉴스종합|2020-03-26 10:11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정의당이 요즘들어 영 맥을 못추고 있다. 지지율은 최저치로 떨어졌고, 좀처럼 반등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례대표 1번 후보자의 ‘자격 논란’으로 많은 뒷말을 남기면서 당 내부는 어수선하다. 정의당으로선 총선이 2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기에 여간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단 지지율이 최악이다. 지난 23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포인트)에 따르면, 정의당의 지지율은 3.7%였다. 이는 지난 16∼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이 결과는 같은 조사에서의 지난 2018년 4월 셋째주(3.9%) 이래 최저치다. 정의당의 최고 지지도는 2018년 8월 첫주에 기록한 14.3%다. 이 시점은 노회찬 전 의원이 별세한 바로 직후였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3.7%의 지지도는 참담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반토막 정도가 아니라 4분의1 토막까지 난 셈이다. 일부 언론에선 이런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을 놓고 ‘날개 없는 추락’이라고 했다. 위기감이 절정이 달한 정의당의 현재를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라는 거대정당 틈에서도 한때 두자릿수, 평소엔 고정적인 한자릿수(5~7% 정도) 지지율을 보이면서 나름대로 정치권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해온 정의당은 왜 추락하고 있을까.

정의당이 그동안의 존립기반이었던 ‘진보적 가치와 원칙’을 저버렸기에 현재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가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정의당에 대한 충고 한마디는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정의당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색깔, 자신의 노선, 자신의 철학을 잃었기에 오늘의 정의당이 고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작은 ‘조국 공방’ 정국에서 시작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공정과 불공정 문제는 정의당으로선 중차대한 이슈였다. 진보성향의 젊은층의 지지 이유 중 하나인 ‘공정의 가치’에 대해선 진중하게 접근해야 했었다. 정의당엔 다른 거대정당에 없는 보검(寶劍)이 하나 있었다. 무협지로 따지자면 무림 명문대가에 이어져 온 명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명검 말이다. 그것은 바로 ‘데스노트’였다. 정의당이 불공정하다고 낙인 찍으면 천하의 누구라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데스노트는 정의당의 또다른 존재이유였다. 그런데 정의당은 조국 논란 앞에서 그걸 포기했다. 조국의 편을 당당히 들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조국은 문제가 없다’고 주창했다면 일관성 측면에선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조국 논란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여당 편을 드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게 문제였다. 정의당의 스탠스는 이랬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이번 데스노트는 판단 보류한다’. 다른 이들에겐 엄정한 칼날을 들이댔던 정의당의 데스노트는 조국 논란 앞에선 ‘무딘 칼’로 변한 것이다. 그게 현재의 정의당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니, 엄청난 자충수였다. 실제로 정의당의 데스노트 포기 이후 정의당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었고, 일부 지지층은 깊은 실망감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정의당의 ‘데스노트’는 조국 논란에서만큼은 ‘자충노트’가 됐던 셈이다.

정의당 청년선거대책본부 ‘청년정의’ 출범식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

정의당이 이렇게 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정의당의 오랜 꿈은 거대양당까지는 아니지만, 소수정당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보다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게 소망이었다. 하긴 어느 정당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다만 정의당은 유난히 소수정당의 설움을 겪어왔다. 그 설움을 벗어날 천금같은 기회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판단했고, 그걸 얻기 위해 정의당은 데스노트를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 의석 대비 정당득표율이 높은 정당에 유리하다. 당시 정가에선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제를 통해 교섭단체 구성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서 그 제도는 ‘정의당을 위한 법’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보와 보수 거대정당은 정의당의 희망을 뭉개버렸다. 비례 위성정당을 출현시킨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먼저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이를 꼼수라고 원색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 역시 주판알을 두드리더니 슬그머니 이 흐름에 가세한 것이다. 정의당은 이로써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명분도 못지키고 실리도 잃게 됐다. ‘데스노트 명검’까지 장롱안에 넣으면서 교섭단체를 노리던 정의당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자충수를 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해 9월 열린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조국 논란에서의 데스노트 제외와 관련해 “정의당 결정이 국민적 기대에 못미쳤던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버스는 지난뒤였다.

이런 ‘데스노트 포기’로부터 야기된 지지층 이탈이라는 극도의 위기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게 당연히 정의당이다. 이번 4·15 총선에 출마하는 정의당 청년 후보들이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 당시 정의당이 찬성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한 것은 이런 배경이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청년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청년후보들은 조국 사태를 거론하면서 반성론을 펼쳤다고 한다. 특히 정의당 비례대표 2번 장혜영 청년선대본부장은 “이번 한 번만 타협하면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약자들을 대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정의당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간 우리가 비판해온 거대 양당들의 모습을 닮아간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고 한다. 데스노트를 한번 눈감아주면서 ‘달콤한 열매’를 기대했던 정의당의 모습에 자성한 것이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의당이)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진보의 원칙과 가치를 몇석의 의석과 바꿀 바에는 차라리 다 민주당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했다. 진 전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의당의 ‘젊음 피’들의 조국 공방 대처때의 행보에 자성을 강조하며 ‘자기만의 가치’에 주목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의당 배복주 비례대표 후보(왼쪽부터), 조혜민 성평등선대본부장, 부천소사 신현자 후보, 박인숙 성평등선대본부장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텔레그램 N번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여기서 고(故)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얘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수년전 노 전 의원을 모 토론회에서 만났다. 같은 패널로 나섰는데, 치열하게 토론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 나지 않지만 노 전 의원은 현안에 대해 절제되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그러나 때론 날카롭게 반론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건물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려고 대로로 나갔는데 노 전 의원이 거기에 서 있었다. 오늘 만나 영광이었다고 인사를 건넨뒤 왜 여기 계시냐고 했더니 “버스 타려고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집으로 가야 하는데, 몇번 버스 타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도 한다. “어, 기사님 안계세요?”라고 했더니 그냥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 실업자입니다. 기사 없죠”. 당시 노 전 의원은 ‘의원’은 아니었다. 지역구에서 떨어지고 잠시 정치를 쉬면서 향후 행보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래도 내로라 하는 유명인물인데, 참 소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기자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물어봤다. 그의 정치철학이 궁금했다. 노 전 의원은 정치를 하는 이유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길가에서의 대화였고, 곧바로 헤어졌으니 뒷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노 전 의원은 진보정당이 오랫동안 지켜온 ‘존재 가치’를 거론한 것 같다.

정의당은 그런 노 전 의원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왔다. 지난 2018년 7월 노 전 의원이 별세했을때 심상정 당시 정의당 의원은 국회 영결식 추도사에서 “그동안 고인이 함께 해줘 힘든 진보정치의 길을 감당하고 견딜 수 있었다”며 “이제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테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길”이라고 영면을 기원했다.

‘진보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해 위기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는 정의당. 오늘의 정의당 모습을 보니 노 전 의원과의 ‘도로 대화’가 새삼 떠오른다. 노 전 의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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