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푸른 수염의 아내들

샤를 페로의 민담집 ‘옛이야기와 교훈’(1697)에는 푸른 수염을 가진 귀족의 아내들이 자꾸 사라지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푸른 수염’은 새 신부에게 성안의 어떤 방이건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만, 아래층 복도 끝의 방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금기의 문은 더욱 열고 싶은 욕망을 부추겨서 신부는 결국 문을 열고 만다. 그 안에는 죽은 아내들의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금기를 어긴 벌로 신부들이 하나둘 죽어가는데, 첫 번째 신부는 무엇 때문에 죽게 되었을까.

하성란의 단편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이 궁금증을 한국적인 문화권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비행기에서 만나 세 살 연하의 뉴질랜드 시민권을 가진 남자 제이슨과 결혼한다. 한국에서 월급 약사로 일하던 그녀는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시댁 덕분에 뉴질랜드에서 풍족한 신혼생활을 한다. 유학생인 남편은 무엇이든지 그녀에게 하라고 하지만, ‘챙’과 공부할 때는 방문을 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문을 열게 되고 제이슨은 동성애자임이 밝혀진다. 비밀이 탄로 난 남편은 아내를 오동나무 장롱에 관처럼 가둔다. ‘나’는 제이슨에게서 간신히 탈출하지만, ‘첫 번째 아내’였기에 이어질 재앙을 예측하지 않을 수 없다.

살인은 몇 번째 아내까지 계속되어야만 했을까.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장편소설 〈푸른 수염〉은 돈 멜레미리오라는 귀족이 아주 싼 가격에 세를 놓아 여인들을 자신의 성으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다. 사튀르닌은 싼 집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홉 번째 여자가 되어 들어간다. 성안의 다른 방들은 물론 하인들이나 음식까지 다 누릴 수 있지만, 하나의 방문은 결코 열면 안 된다. 사튀르닌은 실종된 여자들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실종된 여자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마침내 비밀과 마주했을 때, 사튀르닌은 살아 있는 모델이 되기를 자처하며 남자의 예술 활동을 독려하는 척한다. 마지막에 돈 멜레미리오를 냉동고에 가둬 버리고 성을 나옴으로써 살인 행각은 드디어 끝이 난다.

한편, 한국의 연쇄살인은 주로 여성들을 차례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푸른 수염을 상기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이 계속 결혼하기 위해 여자를 설득한 방식은 “너무 많이 푸른 수염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을 조정한 것이다. 하성란과 아멜리 노통브도 남자가 멋지고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여성에게 ‘생각하게’ 한 점은 유사하다. 그런데 여성들 가운데 유독 사튀르닌이 살인마를 처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튀르닌은 루브르 미술 보조 교사로 일하면서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정신세계가 살인자의 밀실에 실현된 부와 욕망의 예술세계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꼈다. 살인마보다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자각 덕분에 그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속적인 희생을 끊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보호하는 안전 시스템이 우선적이지만, 동시에 육체적으로 연약하다는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정신력을 약하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성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를 자각하는 교육이나 사회 인식이 도리어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