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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난세의 영웅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에 미소가 넘쳤다. 지난 6일(현지시간) 우즈가 ‘자유 메달’을 받는 자리였다. 이 상은 미국에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이다. 우즈는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지난달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역대 최고의 부활 스토리를 썼다. 그런데 보통 이 훈장은 평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수상자의 커리어가 끝나지 않은 시기에 주는 건 매우 드물다. 트럼프의 속내가 있어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분석했다. “트럼프는 영웅을 띄움으로써 그(우즈)의 컴백 스토리의 일부가 되려 했다.” 트럼프는 실제 이날 시상식에서 “우즈는 언제나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을 잘 구현했다”고 말했다. ‘미국을 위대하게!’ 자신의 슬로건에 딱 맞는 우즈를 ‘돌아온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약화된 정치력에 이용하고 싶었던 것같다.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미국의 ‘영웅 만들기’는 매우 흔한 일이다.

흥미롭게도 같은날 공개된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매체 기고문에도 ‘영웅’이 몇차례 언급됐다. 기고문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평범한 사람’이다. ‘영웅’은 이의 대척점에 배치됐다. 난세는 “영웅은 탄생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시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동양의 옛말은 ‘평범한 힘이 난세를 극복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평범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촛불혁명이 염원하는 나라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자 원고지 90장 분량의 긴 글이지만, 오랜기간 다지고 채운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극적인 역사적 장면, 특유의 감성 어법이 유려하게 어우러져 술술 잘 읽혔다.

그런데 어쩐지 2년 전 취임사 때만큼의 감동이 와닿지 않았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조차 가슴 뻐근한 기대감을 갖게 한 취임사였다. 대통령의 언어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은 지난 2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제지표는 갈수록 나빠지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무기력해 있다.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은 끝이 없고 노동계는 2년 내내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가득찬 이 사회는 이념·계층·세대·남녀·직종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촛불혁명’을 이야기하고, 여전히 소득주도성장과 대북정책 기조를 고집한다. 적폐청산에 대해선 “타협은 없다”고 못박는다.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언어는 국민의 팍팍한 일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난세의 영웅’과 ‘평범한 사람’을 반대 개념으로 구분한 듯하다. 하지만 어쩌면 적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을 타개해줄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대통령에게, 우리 정부에, 실패한 정책을 포기하고 민생을 살릴 용기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기대할지 모른다. 경제에 성장을, 사회엔 화합을, 그리고 청년에겐 미래를 안겨줄 진짜 영웅의 모습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범자 사회섹션 에디터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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