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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 대사 까먹고 세트 무너지고… 실수해야 더 완벽하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더플레이 댓 고우즈 롱’ 공연장면. [제공=신시컴퍼니]
최악의 공연이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공연 중에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벽에 걸린 소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세트가 무너져 내린다면 당연히 공연은 중단되고 관객은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실수연발 속에서 끝까지 공연을 마친 작품이 있다. 신시컴퍼니 30주년과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공연된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크리스 빈 연출)이다. 말 그대로 ‘뭔가 점점 잘 못 되어가는 연극’, 배우들이 완벽하게 실수해야 실수 없는 공연이 된다.

코믹극인 이 공연에서 대사를 틀리는 건 아주 작은 실수 중 하나였다. 대사를 완전히 잊어버려 같은 구간을 몇 번씩 반복하고, 벽에 걸린 액자가 떨어지고, 약속 된 자리에 있어야 할 소품이 없어 엉뚱한 소품을 들고 나가는가 하면, 소품에 불이 붙고, 문이 열리지 않아 배우가 등장을 하지 못하거나, 배우가 기절을 하는 바람에 결국 스텝이 대역을 하기에 이른다. 우르르 와장창. 깨지고 무너지고,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공연, 이 와중에 공연을 끝까지 끌고 가려는 배우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하다. 오히려 누구는 침착하게, 누구는 소심하게 또는 대범하게, 사고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드러나는 각 인물들의 캐릭터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뚜렷하다.

공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배우들이 비장하게 이어나가려는 이야기는 미스터리 장르 연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이다. 극 속의 또 다른 극,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 이야기의 전개가 이해되는 것이 놀랍다.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더 이상 최악의 상황이 있을까 싶었지만 2부에서도 이어지는 실수들은 결국 세트가 무너지는 위험천만한 상황까지 간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연발 속에 난데없이 배우와 세트가 충돌하고, 배우가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연극은 중단 없이 흘러간다. 사실 코믹극은 가장 힘든 공연장르 중 하나다. 이 공연은 단지 웃기려고 하기 보단 극한상황에서도 극을 끝까지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 초점이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접근이 웃음을 강요하는 뻔한 코믹극과의 차별을 만들어 냈다.

또한 ‘재미있기’ 위해 극단성이나 놀라움 등 코믹 감정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웃음의 생산 장치들이 매우 다양하고 스펙터클했는데, 우스꽝스럽거나 터무니없는 장면에 황당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불안하고, 안도하고, 통쾌하고 아찔하며 스릴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의 변화를 빠르게 유발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의 균형이 결과적으로 공연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한다.

배우와 공간, 장치, 소도구의 합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타이밍과 앙상블은 그저 감탄스러웠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4차의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배우들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관객몰이와 티켓 마케팅을 위해 스타배우에 의존하는 국내 공연계에 따끔한 일침과도 같았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에서 리얼하고 완벽한 실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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