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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뷰] 실재했던 이야기에 더해진 탄탄한 스토리…뮤지컬 ‘팬레터’
뉴스| 2019-11-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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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즌 공연 장면 / 사진=라이브(주)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글에는 힘이 있다. 더구나 잘 쓰인, 또 사람의 마음이 담긴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펜을 들고, 그 글은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심지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게 글이다.

뮤지컬 ‘팬레터’는 글의 힘을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결합한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서정적인 넘버, 때에 따라 변하는 조명이 더해지면서 더 풍성하고 짜임새 있게 그려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성(서울)을 무대로 당대 최고 문인들의 예술혼과 사랑을 담아낸다. 동경 유학생이자 작가 지망생 정세훈은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인 김해진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유학생활을 접고 돌아온 세훈은 순수문학 모임인 ‘칠인회’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김해진을 만난다.

김해진은 히카루의 진짜 존재는 알지 못한 채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고, 세훈은 그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이어가며 자신의 다른 인격체인 히카루와 해진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히카루에 대한 해진의 집착은 ‘뮤즈’를 넘어 점점 광기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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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즌 공연 장면 / 사진=라이브(주)제공


해진의 감정 변화는 공연장의 분위기마저 바꿔놓는다. 지난 13일 공연에서 이규형은 한없이 다정하고 온화한 말투와 표정의 김해진의 모습에서 광기서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묵직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의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또 이용규와 김수연은 각각 정세훈과 히카루를 연기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인격이었다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의 호흡은 소름을 돋게 할 정도다. 이용규와 김수연은 안무를 통해 사실상 한 사람의 또 다른 인격임을 표현해낸다. 이 장면은 극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1930년대 실재한 순수문학 모임 구인회를 모델로 한 ‘칠인회’ 멤버인 이윤(정민 분), 이태준(양승리 분), 김수남(이승현 분), 김환태(권동호 분)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이 작품에 녹아든다. 특히 칠인회는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과 시대적 고민을 보여준다. 소설가 이태준과 문학평론가 김환태는 실존했던 인물을 그대로 끌어왔고, 이윤은 천재 시인 이상을, 김수남은 시인 김기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뮤지컬 ‘팬레터’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그림자’다. 무대 뒤편에서 움직이는 배우들의 실루엣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보이지 않는 내면을 그림자로 표현해내면서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작품을 두고 혹자는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짜임새’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이 작품에 ‘화려함’이 결여되어 있지 않다. 탄탄한 짜임새는 기본이고,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와 그에 따라 바뀌는 조명, 서정적이었다가도 한순간 격정적으로 바뀌는 음악은 충분히 작품을 화려하게 만들어내는 요소다.

공연은 2020년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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