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연 잇 수다] ‘그리스’ ‘호프’ ‘언체인’… 이색 마케팅 나선 공연계
뉴스| 2019-03-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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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리스' 쇼케이스(사진=오디컴퍼니)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공연계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패션문화마켓 ‘패션코드 2019 F/W’에는 뮤지컬 ‘그리스’의 주역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무엇보다 이들이 단순히 축하 공연을 꾸민 데 그친 게 아니라 직접 모델이 돼 런웨이에 올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패션코드 2019 F/W’에서도 ‘그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디자인한 의상들을 선보였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패션쇼에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더해져 흥미를 배가시킨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내달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그리스‘의 홍보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는 평가다.

뮤지컬과 패션 행사의 협업은 이례적인 시도이기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에 대해 ‘그리스’의 제작사 오디컴퍼니는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융복합 트렌드가 성행하는 최근의 흐름에 맞춰 이와 같은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리스’에서는 패션이 극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꼽힌다.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세대가 선호한 로큰롤 문화를 바탕으로 꿈과 열정·사랑을 다루는 작품으로, 가죽 재킷이나 알로하 프린트의 스포츠 셔츠·플레어 스커트 등 당대 유행했던 ‘로큰롤룩’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패션 행사와 손을 잡고 색다른 마케팅에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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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에 오른 팝시컬 그룹 핑크레이디(사진=KBS 뉴스화면)



여기서 ‘그리스’의 프로듀서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 대표는 이번 ‘패션코드 2019 F/W’에 앞서 뮤지컬과 K팝 장르적 결합을 표방, ‘그리스’ 출연자들로 구성된 ‘팝시컬(POSICAL)’ 그룹을 데뷔시킨 바 있다. 이를 위해 오디컴퍼니와는 별개로 멀티 콘텐츠 그룹 오디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윤(샌디 역)·이후(프렌치 역)·예주(마티 역)·우림(리조 역)·현지(패티 역)로 이뤄진 걸그룹 핑크레이디가 지난달 20일 디지털 싱글 ‘갓 걸(GOD GIRL)’을 내놓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뒤를 이어 영한(로저 역)·나라(소니 역)·태오(대니 역)·석준(두디 역)·동욱(유진 역)이 보이그룹 티버드로 데뷔, 지난 14일 첫 싱글 ‘롹스타(ROCK STAR)’를 발표했다. 두 그룹 모두 멤버 전원이 그간의 작품 활동으로 가창력과 춤실력을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음악 팬들의 호평을 듣고 있다. 이에 대해 오디엔터테인먼트는 “두 프로젝트 그룹은 가수 활동 이후 ‘그리스’ 무대에도 오르며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8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호프(HOPE): 읽히지 않은 책(이하 호프)’도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독서앱 밀리의 서재와 함께 리딩북을 선보인 것이다.

리딩북이란 이른바 리더(reader)가 한 권의 책을 30분 내외로 요약해 해설과 함께 읽어주는 방식을 쓴다. ‘호프’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은 차지연과 극 중 원고지를 의인화한 캐릭터 ‘K’ 역의 조형균이 리더로 나섰다.

‘호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와 소유권을 둘러싼 실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다만 ‘카프카 유작 원고 반환 소송’에서 큰 틀을 따오되 등장 인물과 상황을 새롭게 재구성, 평생 원고를 지켜온 호프의 생을 쫓아간다. 이에 따라 ‘호프’의 차지연과 조형균은 뮤지컬의 모티브가 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소송’을 소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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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북 녹음 중인 뮤지컬 '호프'의 조형균(왼쪽) 차지연(사진=밀리의 서재)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독서 문화에도 변화가 찾아온 현재, 책을 다룬 뮤지컬 ‘호프’와 밀리의 서재가 함께한 컬래버레이션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별한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 차지연은 “‘호프’의 모티브가 된 카프카를 글로 만나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소감을 밝혔으며, 조형균도 “카프카의 소설을 먼저 읽고 ‘호프’를 관람한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변화는 소극장 공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오는 4월 3일 서울 동숭동 콘텐츠그라운드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언체인’이다. 이 작품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티저 콘텐츠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언체인’ 공식 SNS 계정에 게재된 ‘미리 듣기’ 영상에는 출연 배우들이 각자 맡은 캐릭터의 대사 일부를 짤막하게 읊는 소리가 담겼다. 기존의 공연 티저가 포스터·캐릭터 프로필·연습 사진·스팟 영상 등으로 제한되는 것과 비교하면 새롭다. 특히 공연의 한 장면을 소리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언체인’을 기대하는 예비 관객들에게는 기대치를 높이는 한편, ‘언체인’을 몰랐던 이들의 관심까지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 특히 한 인물을 여러 배우가 연기하는 공연의 특성 상 ‘미리 듣기’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배우를 골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올해 두 번째 관객들을 만나게 된 ‘언체인’은 밀폐된 공간 안에 갇힌 마크와 싱어가 의문의 사건에 대해 실마리를 찾고자 심리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2인극의 소규모 공연으로, 2017년 초연을 올렸다. 당시 ‘언체인’은 출발부터 독특한 크로스오버를 선보인 바 있다. 배우 박성웅 주연의 영화 ‘메소드’와 기획부터 제작·상연(영)까지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메소드’는 베테랑 연극 배우와 아이돌 가수가 ‘언체인’에 함께 출연하며 일어난 일을 담은 바, 스크린으로 ‘메소드’를 만난 관객들이 이후 ‘언체인’까지 찾는 선순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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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오디오 티저(사진=콘텐츠플래닝 SNS)



이처럼 공연 마케팅에 새 바람이 불어온 현재, 그 선두에 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오페라를 대중화한 게 뮤지컬”이라며 “뮤지컬도 많이 대중화됐다고 하지만 극장 문턱을 더 낮추고자 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대중 속에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과연 일부 작품들이 꾀한 색다른 시도가 공연계 전반에 퍼지며 보다 대중성을 가진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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