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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레도 과학” 50대 공대 교수, ‘보는 발레’에서 ‘취미리노’로… [인터뷰]
배진수 세종대 교수 인터뷰
“발레의 아름다움에 반한 중년…
보는 발레에서 취미리노, 교육자로”
‘보는 발레’를 즐기던 배진수 세종대 교수는 ‘하는 발레’로 빠지더니, 발레 마니아를 사로잡은 책(‘물리의 뿔리에’)을 냈고, ‘발레 교육’에까지 발을 디뎠다. [스튜디오명 윤식스포토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새하얀 튀튀(tutu·발레리나의 옷) 아래 쭉 뻗은 수십개의 토슈즈, 우아하게 뻗어올린 긴 팔…. 한 번의 호흡, 그런 다음 중력을 거슬러 사뿐히 날아오른다. 20여명의 무용수들이 장관을 이루는 ‘백색 발레’는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생애 첫 발레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였어요. 대사가 없어 피로감도 덜했고, 추상적으로만 알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무대에서 직접 마주한 기분이었어요.”

지천명을 넘긴 중년 남성. 게다가 ‘공대 교수’. ‘보는 발레’를 즐기던 50대의 그는 어느 순간 ‘하는 발레’로 빠지더니, 발레 마니아를 사로잡은 책(‘물리의 쁠리에’)을 냈고, ‘발레 교육’에까지 발을 디뎠다. 배진수(51) 세종대 전자정보통신공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일생을 ‘과학도’로 살아온 배 교수는 1년 6개월 전부터 세종대의 ‘무용과 공동 소속’ 교수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만난 배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발레도 과학”이라며 “발레는 근력으로 중력을 이겨내는 일”이라고 했다.

‘배진수 세종대 교수는 “발레는 보다 보면 배우고 싶어진다”며 다만 “‘취미리노’(남성 취미발레 수강생을 일컫는 말)가 되기 위해선 과거가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스튜디오명 윤식스포토 제공]

■ ‘보는 발레’에서 ‘하는 발레’로…‘취미리노’로의 진화

“요가나 필라테스, 발레를 하다 보면 해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어요. 해부학을 배우면 근육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요. 발레를 처음 배울 때 그나마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지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발레는 보다 보면 배우고 싶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취미 발레’에 중년 남성이 뛰어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국립발레단 전 단원의 특강”을 계기로, 용기내 동네 학원을 찾아갔다. 생각 이상으로 ‘장벽’이 높았다.

“취미 발레 학원 수강생의 대부분은 여성인데, 일부 남성 수강생에 의한 불미스런 사건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남성의 경우 신원이 확실하고 믿을만한 사람만 확인 후에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취미리노’(남성 취미발레 수강생을 일컫는 말)가 되기 위해선 과거가 깨끗해야 하죠. (웃음)”

발레를 처음 배울 당시 배 교수는 체중이 꽤 나가는 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점프 등의 동작을 많이 하면 무릎 등 관절 부위에 부상을 입거나 경직된 근육으로 인해 염좌를 앓기도” 했다.

“운동으로 배우는 발레와 춤으로 배우는 발레는 확실한 경계선이 있더라고요. 춤으로 배우는 발레는 부상과 떨어질 수 없어요. 실제로 동작을 배우면서 춤을 추는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발레 공연을 감상할 때 이전에는 보지 못하는 점들을 발견하기도 해요. 이 역시 제겐 선물 같은 즐거움이에요.”

배진수 세종대 교수는 “예술과 공학의 융합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도에만 매달리면 예술은 사라지고 비즈니스만 남게 된다”며 “안정적 지원과 후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예술인들과 타 분야의 융합으로 새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튜디오명 윤식스포토 제공]

■ 예술과 공학의 융합…“후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배 교수의 ‘발레 일대기’는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됐다. 발레의 아름다움에 빠져 ‘발레 마니아’가 됐고, 그러다 ‘발레 교육’에 발을 디디며 우리나라 발레계의 미래를 그려간다. ‘공대 교수’인 그가 예술대 교수의 직함도 안은 것은 시대적 흐름과 함께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융복합’이 우선 가치가 되는 때다. ‘예술과 공학의 융합’ 역시 새로운 시대의 과제다.

배 교수는 다만 “예술과 공학의 융합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도에만 매달리면 예술은 사라지고 비즈니스만 남게 된다”며 “안정적 지원과 후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예술인들과 타 분야의 융합으로 새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과 공학의 융합’을 ‘후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발레는 음악과 달리 음반 수익이 없는 데다 참여하는 인원이 많고 의상이나 무대 비용이 너무 커요. 다른 예술에 비해 더 어려운 장르죠. 그래서 예전부터 발레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후원이 필요했고요. 후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발레단과 그렇지 못한 발레단은 공연 수준, 단원들의 처우, 지속가능성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어요.”

배 교수는 특히 ‘공적 지원의 신중함’을 강조한다. “공적인 후원은 무용 생태계 유지에 목적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무용계에 발을 디디고 보니 배 교수가 보는 현재의 무용계는 공적 후원의 수혜에서부터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하다.

그는 “지금의 무용계는 비례대표성이 왜곡돼 있어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무용인은 지원으로부터 소외돼 있고 무용 관련 협회 임원진들에 의해 편집된 무용계가 따로 존재, 이들이 정책 수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용인의 다수는 여성인 반면 각종 무용관련 협회 임원의 상당수는 남성이고, 한국무용과 발레를 전공한 무용인이 다수인데도 임원들은 대부분 현대무용 전공자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배 교수는 “공적 후원금이 무용계 구석구석까지 공급되는 ‘감시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시스템의 변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일이다. 배 교수는 그것이 ‘예술과 공학의 결합’에서 나오리라 봤다. 그는 현재 “게임 속 캐릭터의 움직임을 무용수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만들거나”, “움직임을 부호화해 저장한 뒤 데이터 베이스로 만들어 저작권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공학과 결합한 새 전략이 ‘예술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이 시대의 융합은 두 가지를 합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은 예술 그대로 유지하되 날개를 달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예술가에게 필요한 진정한 융합이 되리라 봅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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