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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진 “음악은 좋아서 하는 것…악보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
정규 음반 ‘헨델 프로젝트’
“태어나 가장 많이 연습”
음악계에서 역할은 없었으면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게 음악은 좋아서 하는 것”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4일 독일 베를린에서 '헨델 프로젝트' 음반 발매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년쯤 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던 때였다. 음악가로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때 조성진은 “헨델 음반의 녹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직감적으로 바로크 음악을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헨델은 가슴에서 나오는 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많이 와닿더라고요. 2020년이었으니, 내후년쯤 녹음해보면 좋겠다는 저 혼자만의 생각을 가졌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이 헨델로 돌아왔다.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헨델 프로젝트’(The Handel Project)를 발매한 그는 4일 독일 베를린에서 국내 언론과의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조성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 첫 도전 ‘헨델 프로젝트’…“태어나 가장 많이 연습”

‘헨델 프로젝트’는 조성진이 2021년 DG에서 발표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 스케르초’에 이어 선보이는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고전을 다뤄온 전작들과 달리 처음으로 바로크 음악을 담은 것은 조성진의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로 세워지고 있다. 바로크 시대를 다루면서 바흐가 아닌 헨델을 선택한 것도 특별한 지점이다.

“사실 바흐는 아직 녹음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어요. 바흐는 좀 더 지적이고 복잡하다면, 헨델은 조금 더 멜로딕한 면이 있어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았던 제겐 헨델이 조금 더 쉽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연습하면서 헨델도 만만치 않구나 생각했어요.”

조성진의 첫 헨델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자 타이틀’을 딴 이후, 쇼팽(2016, 2021)은 물론 드뷔시(2017), 모차르트(2018), 슈베르트 리스트(2020, ‘방랑자들’) 등 다양한 작곡가를 탐구했다. 그런데도 그는 “헨델을 준비할 때 태어나서 가장 많은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바로크 음악은 손에 붙어 자신감이 생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악 같아요. 작년 2월엔 투어가 취소돼 한달간 집에 있게 돼 하루에 7~8시간씩 연습했어요. 투어를 하면서 곡을 익혀야 하다 보니 집에 있을 때 연주를 많이 연습하려고 해요. 하루에 30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음반엔 1720년 런던에서 처음 출판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2권 중에서 “그저 마음에 와닿는 곡”을 골랐다. “왜 마음에 드는지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곡들”이다. 음반엔 ‘모음곡 2번 F 장조 HWV 427’, ‘8번 F 단조 HWV 433’, ‘5번 E 장조 모음곡 5번 HWV 430’이다.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가 함께 담겼다. 작년 9월 베를린 지멘스 빌라에서 녹음했다.

조성진은 ‘현대 피아노’로 하프시코드 모음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서스테인 페달(피아노 음을 지속시키는 페달)을 사용하지 않거나 강약을 조절했다. 그는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고 피아노는 현을 치기 때문에 건반이 있다는 것 외엔 다른 악기라고 생각한다”며 “하프시코드는 내게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현대 피아노는 강약 조절이 더 쉽고, 표현력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우린 아무도 몰라요. 헨델과 바흐가 현대 피아노 연주 버전을 좋아할지는. 그래도 바로크 음악은 해석의 폭이 넓다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낭만적으로 할 수도 있고, 글렌 굴드처럼 할 수도 있고요. 이번엔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해석한 거예요.”

“새로운 도전에 희열을 느낀다”는 조성진은 헨델과의 만남에 이전엔 마주하지 못한 신선한 발견과 애정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헨델 음악은 충분히 한국의 초중고 음악 전공생들이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연주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도 그랬지만, 콩쿠르에 나갈 땐 리스트처럼 화려한 곡을 연주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안 좋다는 것은 아니에요. 테크닉적으로 그런 곡들은 훨씬 어렵지만 콩쿠르엔 효과적이니까요. 헨델의 작품도 공부하게 되면 얻는 게 있을 거라고 봐요.”

조성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 “BTS 같은 스타가 아니다…더 올라갈 고민해야 할 때”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이후, 조성진은 ‘클래식 음악계의 BTS’로 떠올랐다. 뛰어난 음악성과 스타성을 갖춘 새로운 피아니스트의 등장이었다.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하는 그의 공연은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상징이다. 조성진은 ‘소수의 음악’이었던 클래식을 대중 곁으로 다가오게 했다. 국내외 음악계에서 차세대 클래식 스타의 탄생을 반겼다. 조성진을 기점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K-클래식을 이끄는 가장 상징적인 음악가다.

조성진은 “1년 전부터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관심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인들의 연주 비결”이나, “많은 연주자들의 콩쿠르 출전”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원래 잘했다’고 답해왔어요. 그러니 한국 클래식에 대한 관심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클래식은 유럽 음악이고, 유럽 시장이기에 동양인 연주자를 아직도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국악을 하는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요. 부자연스러워보이지 않으려면 더 연습을 많이 해야 돼요.”

조성진 자체가 ‘콩쿠르 스타’였지만, 스스로는 “콩쿠르는 싫어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왜 이토록 콩쿠르에 많이 나가냐”고 묻는 해외 언론의 질문에는 늘 분명한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저 역시 경험을 많이 해봤어요. 이것 밖에 기회가 없을 수 있어요. 콩쿠르를 통해 인지도가 쌓이고, 연주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잘 해내면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수도 있어요.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헨델 프로젝트' 음반 발매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 [유니버설뮤직 제공]

국내 클래식 계에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은 없다”고 말한다. “역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음악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관객들에게 좋은 음악, 멋있는 음악, 위대한 음악을 보여드리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어떤 역할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없어요. 가장 행복할 때는 투어를 마치고 집에 와서 쉴 때예요. 쉬다가 연습하고, 새로운 악보를 사서 배우는 것이 제일 행복해요.”

쇼팽 콩쿠르 이후 9년이 지났고,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됐다. 조성진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처럼, 그동안 서른이란 나이가 무겁게 다가왔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몇 달 전과 비슷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음악 감상’은 클래식으로 편중돼 있지만, 그가 좋아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이젠 동세대 연주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커리어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김없이 연주 일정은 꽉 차있다. “다시 코로나 이전처럼 바빠졌어요. 살아있는 느낌도 들고, 제가 쓸모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연주 여행을 다닐 때마다 드라마도 즐겨본다. 최근엔 “‘더 글로리’를 재밌게 봤다”고 한다.

헨델 프로젝트를 선보인 지금, 세계 투어도 이어갈 계획이다. 한국 관객과도 더 자주 만난다. 오는 3월엔 정명훈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협연이 예정돼 있고, 7월엔 총 5번의 독주회를 연다. 세계 무대가 먼저 찾는 연주자이자, 클래식계 최고의 팬덤을 자랑하는 스타이지만 조성진은 스스로를 ‘성공한 음악가’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는 “연주자로서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추락보다는 안전하게 착륙하고 싶다’는 BTS와 같은 고민도 그에겐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제 연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한 도시에 1000~2000명 정도만 있으면 너무나 감사할 것 같아요. 전 BTS 같은 스타가 아니어서 인기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만한 것 같아요. 추락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올라갈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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