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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 2억 올려달라해서 보니 매매는 5억원 올라…‘영끌’ 안 한 3040 좌절
서울에 집 있으면 투기꾼 취급…복잡한 규제에 선의의 피해자 속출
땜질 처방, 누더기 규제에 오히려 중산층 진입 끊어버려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전세난민(전셋값 상승을 감당 못하고 이사하는 임차인)’…. 문재인 정부가 21번의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놓는 동안 나온 신조어들이다. 규제가 시장에서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집값이 오를수록 정부가 대출의 문턱도 같이 높이면서 오히려 ‘내 집 마련’이 더 멀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전세시장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 가격 급등도 우려대로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밀집 지역. [헤럴드경제DB]

전세가·매매가 동반 급등했는데, 대출은 막혀

7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강북 지역 주요 아파트 6곳의 전세 가격은 2년 전에 비해 억대로 상승했다.

마포구의 대장주로 불리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2단지 59㎡(이하 전용면적)의 전세 실거래가는 2018년 하반기 5억원대였으나 최근엔 7억원에 거래됐다. 최근 이 아파트에서 전세 재계약을 하려면 1억원 이상 값을 올려줘야 하는 셈이다.

같은 구의 래미안웰스트림 59㎡는 2년 전 전세 가격 5억원에서 지난달 1억원 더 높은 6억원에 전세 계약서를 썼는데, 보름 만에 전세보증금 호가는 7억5000만원까지 올랐다.

성동구의 옥수어울림 84㎡도 2년 전 7억원이던 전세 가격이 최근엔 8억7000만원에 계약됐다. 사정은 다른 아파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길뉴타운의 래미안에스티움 59㎡도 2년 전 전셋값은 5억원이었으나 최근 호가는 6억원이고, 그나마도 매물이 없다.

문제는 억대의 전세 보증금보다 배 이상 상승한 매매 가격이다. 래미안 웰스트림의 2년 전 매매 가격은 9억5000만원이었으나 지난 3월 실거래가는 13억5000만원으로 4억원이 올랐다. 최근 호가는 한강 조망이 되는 세대 기준으로 15억원까지 불린다.

경희궁자이 2단지 84㎡도 5월 실거래가는 14억원이었는데 최근 호가는 17억원이 넘는다. 2년 전 매매 가격이 12억원 아래였던 것을 감안하면 5억원 이상 상승한 셈이다. 이 기간 전세 가격도 2억5000만원이 올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통상 전셋값이 갑자기 오르면 대출받아 매수에 나서 내 집 마련하는 게 패턴이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지 않나”면서 “이젠 대기업 맞벌이 부부도 대출이 안 될까 봐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 내 집 있으면 ‘투기꾼’ 취급…맞벌이 부부는 각종 혜택 벗어나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30대 A씨는 최근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2억원 이상 올려줘야 재계약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신혼집을 세주고, 아이가 둘이라 더 넓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데 집이 있어서 전세자금대출을 못 받는다”며 “집을 팔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신혼집이었던 좁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6·17대책으로 내놓은 갭투자(전세금을 낀 주택 매매) 방지책이 되레 ‘전세난’을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누더기식 대책으로 상당수 국민의 주거 여건은 악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실수요=실거주’ 공식을 대입하면서 A씨처럼 투기적 성향이 없는 실수요자가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다.

게다가 21번의 대책을 내놓는 동안 무주택자나 사회초년생 등 일부에만 정책적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시장에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더 나은 주거 조건을 찾아 이동하는 방법인 ‘대출’을 막으면서, 중산층 진입을 끊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보금자리론 등을 홍보하고 나섰지만 해당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맞벌이 가구는 오히려 주거사다리가 끊겼다는 설명이다. 보금자리론으로 대출을 받으려면 연소득 7000만원(부부합산) 이하인 가구가 85㎡· 6억원 이하의 주택을 매수해야 한다. 중위 아파트값이 9억원대인 서울에선 이에 모두 해당하기가 쉽지 않다. 국토교통부 여론광장에도 “보금자리론 해당이 쉽지 않으니 풀어달라” “맞벌이 소득만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이미 서울에선 중간 가격 이상이 다 고가 주택인 9억원에 해당하는데, 정부가 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하루라도 먼저 집을 산 사람이 승자가 됐다”며 “오히려 연이은 규제책이 매수심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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