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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코로나바이러스와 국가위기관리 체제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서 가장 역점을 둬 교육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폴밀게임(POLMIL GAME), 즉 정치군사 모의게임이다. 1년간 연수생으로 입학하는 정부 각 부처 고위공무원과 육·해·공군 대령급 장교들로 모의 국무회의를 구성하고, 국가안보 문제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공해 토의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나리오에는 국가 간 무력충돌과 같은 전통적 안보 상황이 담겨져 있기도 하지만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재난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상황이 설정되기도 한다.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국제관계, 군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이 팀을 이뤄 몇 달간 토의를 거치는 것이 다반사다. 폴밀게임은 원래 미국 국방대학과 해군대학 등에서 개발됐다. 전쟁이나 경제공황 등 실제 국가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관료와 군인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부처 간 협업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고안됐다. 한국 국방대도 폴밀게임 유용성에 착목해 핵심 교육과정의 하나로 발전시켜 왔다.

교수들은 관찰자로 참가하면서 멤버들이 제시된 시나리오상 안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 부처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도출하는지, 또한 여타 부처와 협의를 원활하게 진행하면서 위기상황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는지 평가하는 역할을 맡는다.

폴밀게임을 다년간 기획하고 참여해온 경험에 비춰볼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 국가의 위기관리 태세와 능력을 시험하는 중대 계기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 5000명 이상의 확진자와 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국가들이 90여개국을 넘어선 것도 뼈아프다. 국가 간 전쟁 같은 전통적 안보위기뿐만 아니라 질병의 만연 같은 비전통적 안보위기가 국가 기능과 국민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그간 몇 차례 유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국가 위기관리 태세를 점차 강화해왔다. 이전 정부와 달리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전통적 안보위기뿐만 아니라 국가적 재난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조직을 보강했고,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분야별 위기대응부서의 역할도 강화됐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국가 위기관리 태세가 보다 보강돼야 할 필요성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정치지도자들은 언제라도 전통적, 혹은 비전통적 국가위기가 엄습할 수 있다는 엄중한 현실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국가 태세를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 우선과제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 270여개에 달하는 유형별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든 것처럼 전통적 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 비전통적 안보 영역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에서 영역별로 국가위기 상황을 상정해보고 그에 대응하는 매뉴얼과 부처 간 협업 체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해마다 정부 차원에서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위기대응 연습을 보다 실전적인 방식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혹은 비전통적 위기 상황을 시나리오에 고루 반영해 각 분야 공직자들이 다양한 국가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공동대응하는 실질적 협력 채널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한·중·일 간에는 환경, 보건, 교육 등 비전통적 분야에서 협력 어젠다가 추진돼왔다. 이를 보다 발전시켜 비전통적 위기 발생 시 우리의 국가이익을 지켜주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양자 간 관계의 갈등 현안에 매몰되기보다 다자 간 협력 어젠다를 충실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 외교 정책의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가 돼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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