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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주말에 ‘핫플레이스’ 가고, 몸만들기에 열중하는 이유
소비는 현대인의 존재증명
현대엔 유행 따를수록 몰개성화 역설
윤 교수, 유행, 몸, 공간 통해 소비 조명
골목투어는 빠른 속도에 대한 저항
몸가꾸기 열풍 뒤엔 자본의 논리가
공유·경험 중심의 지속가능 소비로 바꿔야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욕망은 보다 세분화된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삶의 다양한 가치를 획득한다. 현대사회에서 구매 동기는 물건이 주는 기능성과 효용성을 넘어 그 물건에 투영된 가치, 즉 이미지, 기호, 상징으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미적 차이를 얻고자 한다.(‘소비 수업’에서)

현대인에게 소비는 물질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비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존재증명이다. 주말, ‘핫플’을 방문해 브런치를 먹고,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으로 ‘나’를 알린다. GPS상에서 우리의 일상은 소비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긴 궤적으로 표시된다.

연세대에서 ‘현대 소비사회의 이해’를 강의해온 윤태영 교수는 출간한 ‘소비수업’(문예출판사)에서 쟝 보드리야르를 인용,“현대사회에서 ‘소비자’라는 호명은 현대의 시민임을 의미하는 표식”이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소비라는 프리즘을 통해 유행, 공간, 패션, 취향 등 열한 가지 풍경을 살피는데, 유행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현대인은 새롭게 등장하는 핫플레이스에 열광하며 공간소비에 몰입하는지, 현대사회에서 교양과 매너는 어떻게 구별짓기를 위한 기제가 됐는지, 현대인들의 몸 가꾸기 열풍의 이유는 무엇인지 등 소비행위를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읽어낸다. 소비를 인문사회학적 시각으로 새롭게 보기 시작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한 데 담아 이해의 길잡이로 삼았다.

유행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속성을 처음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본 학자는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이다. 짐멜은 유행에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모방)과 그러면서도 그들 속에서 조금은 달라지고 싶은 욕망(개성)이 함께 존재한다고 봤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모방하고 그러면서도 그 누군가와 끊임없이 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두 가지 상반된 욕망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속에서 유행은 탄생하고 또 소멸한다”는 것이다.사회학적 관점에선 유행은 계급적 차이의 수단이며 동시에 결과다.

유행의 또 다른 속성은 오늘의 유행 현상 안에 새로운 유행의 씨앗이 이미 잉태돼 있다는 점이다. 유행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신속하게 다른 유행으로 교체되는 것이다.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소비를 무한 반복하게 하는 동력을 얻는다.

윤 교수는 “현대사회의 유행은 자신의 실제를 가리고 상위 계급을 욕망하게 하는 측면이 한층 더 강해졌다”며, “개성을 살리기 위해 유행을 따르면 따를수록 개성이 사라지는 ‘몰개성’의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다”고 지적한다.

골목길이 주목받는 것은 도시의 공간소비 방식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소위 뜨는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보들리야르의 ‘도시산책자’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19세기 도시산책자가 파사주, 백화점 등 상품으로 가득찬 공간을 느릿느릿 유영했던 것처럼 현대의 도시 산책자들은 자본주의적 속도에 맞춰진 현대적 삶의 리듬에 저항하며 어슬렁어슬렁 골목길을 유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핫플레이스가 되고자 하는 거리는 새로운 미적 체험과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몸가꾸기 열풍 또한 육체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육체는 근대 이전 죄악시됐다. 순결한 영혼의 방해물로 여겨져왔으나 탈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재발견되고 모든 담론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해방된 몸은 자본주의에 포섭되면서 이데올로기화 된다.

“해방된 육체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며, 오히려 엄격한 기호로 둔갑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섹시해야 하고, 건강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현대판 판옵티콘에 갇힌 것이다.”(150쪽)

몸가꾸기가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의식의 반영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맥킨리와 하이데가 제시한 ‘객체화된 신체의식’이란 개념으로 설명된다. 사회문화적 기준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고 내면화해 거기에 맞추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피트니스 센터를 찾아 운동하는 것도 타자의 시선을 의식해 보이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더욱 확산, 강화,된다. 몸이 개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현대사회에서 몸가꾸기는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이 대열에 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산업자본이 부추기면서 남성들도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외모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저자는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루키즘이 이 시대의 절대 이념이 됐다며, 다만 최근 이상적인 몸을 거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진 취향에 계급적 문화적 차이가 은폐돼 있다고 밝힌 이는 부르디외다. 저자는 소비를 구별짓기를 위한 현대인의 욕망이 분출되는 통로로 바라본다.

저자는 최근 구별짓기를 위한 소비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소비 대상의 변화와 소유하지 않는 소비 등을 꼽을 만하다. 소유 대신 공유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 재미와 의미를 공유하는 경험소비, 핫플레이스 보다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가는 공간 소비, 과시보다는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문화소비 등이다.

소비의 다양한 풍경과 소비 이면에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학문적 연구와 함께 살핀 저자는 공유와 경험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깨어있는 소비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소비 수업/윤태영 지음/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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