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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리는 리더십, 위기의 대의민주주의]탄핵·망명…정치불신의 중심에 선 ‘선출된 제왕’ 대통령
WP “트럼프, 전체 유권자의 국가원수役 부족”
백악관 ‘어른들의 축’ 깨지고 ‘예스맨’ 천지 변신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서도 진통 속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은 특정 당파의 최고지도자일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와 사회를 대표하는 국가원수가 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제의 역설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번째 역할만 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 시즌 3 방영을 앞두고 상징적 국가원수인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힘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격, 부족한 정치전략과 함께 대통령제를 꼽았다.

현실 정치에서 한발짝 떨어져 통합의 상징 역할을 하는 영국 여왕과 달리,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분열이 심할 때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상징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WP는 앞선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어려운 임무를 잘 수행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백악관과 행정부에 구축돼 있던 ‘어른들의 축’을 완전히 깨버렸다. 2018년 3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전격 경질됐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백악관을 떠났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교체가 기정사실화된지 열흘여 만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사임했다. 취임 1년 만에 정치학자를 대상으로 한 ‘위대한 대통령’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뒤에서 5등을 할 정도로 비판을 받는 처지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그의 힘은 이렇듯 막강하다. 그의 주변에는 이제 ‘예스맨’만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정국으로 빠져들게 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조사한 미 하원 정보위는 탄핵 보고서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핵심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위법 행위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명시했다. 아무도 트럼프 대통령을 막아서지 못한 것이다.

자이르 보이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남미 국가들에서 두드러진다. 남미 최강국인 브라질의 정치 현실을 놓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브라질의 무서운 선거’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정당이 난립하면서 금품이 오가는 선거 풍토가 만연해 있고 대통령은 인기영합적인 근시안적 정책을 펼치다보니 정국이 안정될 틈이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 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집권 사회자유당(PSL)을 탈당해 직접 ‘브라질을 위한 동맹’(APB)이라는 새 정당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의 두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왼쪽)와 후안 과이도(오른쪽)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대선 부정 의혹을 놓고 사실상 두 명의 대통령이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당시 대선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을 포함한 50여개 국가는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최근 가장 단적인 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반정부 시위에 군과 경찰까지 동참하자 결국 지난달 11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했다.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인 그는 2006년 임기를 시작해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볼리비아의 경제성장을 이끌며 재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2014년 위헌 논란을 무릅쓰고 3선에 나섰고 2016년 2월 국민투표까지 실시하면서 임기 연장 야욕을 드러냈다. 당시 모랄레스는 51.3%로 부결됐음에도 대통령직을 이어갔다. 결국 그는 조국을 떠나야 했으며 현재 볼리비아는 공식적인 대통령 없이 임시 권한대행이 불안한 정국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제에서 권력분할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 필수지만 볼리비아에는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법 기능이 취약하다. 입법부는 여당이 장악해 버리면 끝이다. ‘2014년과 2016년 그가 연임을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개인의 선택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것이 정치 인프라가 취약한 나라의 대통령제가 가진 약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지구상에서 천덕꾸러기 대접만 받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아랍의 봄’ 발원지인 북아프리카 튀니지는 지난 10월 대선 결선투표를 실시했다. 두 번째로 치러진 민주주의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 권력 집중화 논란에도 대통령제를 환영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18~25세 젊은 유권자의 표를 정치 아웃사이더였던 카이스 사이에드에게 몰리게 했다.

이미 2011년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 국방 등으로 제한한 튀니지에서 사이에드는 선거제도 개혁, 토지소유 제도 개선 등과 함께 더 많은 권력 분권화를 약속하며 민주주의 축제를 즐겼다. 벤 가르비아 정치평론가는 중동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에서 “벤알리의 장기 독재 퇴진 이후 발생한 제도적 불안이 현재의 대통령제 인기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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