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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칸트의 눈으로 본 한국

칸트는 인간의 대상인식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감성적 직관을 통해 사물을 현상(어떤 것 X)으로 받아들인다. 이어 순수지성 개념인 범주를 통해 분류한다. 그리고 초월적 통각(나는 생각한다)을 통해 이를 종합해서 대상을 인식한다. 칸트는 인간은 현상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지 ‘사물자체’를 절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경험적 실재론자답게 대상인식에서 경험적 한계를 철저히 했다.

국민들의 검찰개혁 요구를 보면서 칸트의 대상인식 과정이 떠올랐다. 검찰은, 수사 대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범주를 통해 분류한 뒤(혐의 적용) 기소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검찰의 기소를 곧 확정판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검찰의 기소는 대상(판결)인식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조국도 그렇고, 정경심도 그렇다. 검찰의 기소는 법원에 심판을 구한다는 것일 뿐 죄가 확정됐다는 건 아니다. 법원에서 다툼 과정이 남아있다. 바로 칸트적 초월적 통각에 의한 종합의 과정이다. 그런데 검찰은 자주 선을 넘고 있다. 마치 인식할 수 없는 사물자체(사건)를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듯이. 고인이 된 노무현대통령을 떠올려 보면, 검찰이 얼마나 많은 선을 넘었는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검찰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 생각할 때마다 ‘1989년 삼양라면 우지 파동’이 떠오른다. 라면생산에 미국산 공업용 소기름을 사용했다는 검찰 발표는 당시 잘 나가던 ‘삼양라면’엔 침체의 서곡이었다. 그 이후 30년, 아직도 사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게임’은 끝난 뒤였다. 국민 간식 대표기업의 몰락을 그 후 누가 책임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중 1827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고통의 기억’ 앞에서 검찰은 한계 없는, 무한한 반성을 해야 한다. 과거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살아있는 현재다.

홍콩의 반송중(反送中) 시위가 중국을 비판했을 때 누구든지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듯이, 국민들의 검찰개혁 요구도 ‘조국 수사’를 통해 본 ‘무차별 압수수색’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촉발되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파스칼은 “무릎을 꿇어라, 기도의 말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파스칼의 말처럼 우리에게 검찰은 ‘법적 이데올로기 장치’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되물을 일이다.

검찰의 수사는 항상 그 안에 ‘무죄의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대상(수사)을 맥없이 따라가기보다는 ‘무죄의 가능성’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검찰개혁은 바로 내 의식 안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칸트적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다.

검찰의 역할은 도자기를 잘 빚어 유약을 바르고 원하는 문양을 그려 넣는 선까지다. 가마에 넣고 불을 지피고 작품을 탄생시키는 일은 검찰의 한계 너머에 있다. 가마 안에서 도자기가 터져버릴 수도 있고, 불과 만난 유약이 전혀 다른 색깔을 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자크 데리다는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계산의 요소이며,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만, 정의는 계산 불가능한 것이며, 정의는 우리가 계산 불가능한 것과 함께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법은 계산하고, 또 계산되어야 한다. kn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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