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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조커, 혹은 코미디의 왕
뉴스종합|2019-10-22 11:27

영화 ‘조커’에서 조커는 ‘코미디의 왕’을 꿈꾸는 ‘거리의 피에로’였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가두 판촉 전문 용역 회사 직원이었다.

코미디란 무엇일까. 그것은 대개,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합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세계를 다룬다. 코미디에서의 말과 인물, 행위는 상식과 논리가 없어 우스꽝스럽다.

웃음은 코미디언의 것이기도 하지만, ‘을’의 것이기도 하다. 코미디언이 연출하는 웃음이란 요령부득의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반응이지만, ‘을’의 웃음이란 대개는, 얼굴에 띄워야 하는, ‘갑’에 대한 호의와 선의의 표현이다. 대개 ‘갑’들은 화를 내고, ‘을’들은 웃는다. 그래서 고담 시의 소외된 시민, 용역회사의 직원, ‘을’ 중의 ‘을’, 즉 조커 이전의 아서 플렉이 가진 ‘웃음 발작증’은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는 뇌 이상으로 의지나 상황에 상관없이 웃음이 발작적으로 터지는 병을 갖고 있었다.

‘조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가난하고 외로운 한 남자 아서 플렉이 사회의 냉대와 부조리로 인해 희대의 악한인 조커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던 고담시, 그가 조커로서의 악행을 시작하자 시민들은 열광한다. 거리에 쏟아져 나와 조커 가면을 쓰고 폭동과 시위를 벌인다.

어둡고 무겁고 예술영화의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이상열기’라 할만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현실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시민들은 날로 악화하는 불평등, 가진자들을 위한 정치, 통치자들의 위선에 분노한다.

시위와 폭동에 휩싸인 영화 속 거리가 낯설지 않다. 지금 세계 어느 한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나올 듯한 장면들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스페인, 홍콩,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칠레, 아이티 등 국가와 대륙,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화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난과 부패,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도 있고, 현정권을 엄호하는 맞불집회도 있다. 분리와 자치,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과 통합과 지배, 복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뒤엉킨다.

의회에 국민의 목소리가 없고, 행정기관은 소수의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됐으며, 사법권력의 공정성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민주주의를 지탱해온 대의제와 삼권분립이 심각하게 무너지는 징후들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제도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의 대통령 탄핵공방과 영국의 브렉시트 혼란은 더 많은 나라들의 더 심각한 제도적·정치적 위기를 대표할 뿐이다.

대의제의 붕괴 위기는 기존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이에 기반한 정당·정치세력들이 더이상 세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 ‘조커’가 보여주는 것은 논리가 해체된 사회, 코미디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이 고담시의 의회와 행정기관, 사법권력에서 권력자들은 ‘코미디의 왕’이 되기 위해서 싸운다. 그들의 코미디가 강화될수록 대중의 삶은 더욱 비극이 된다.

워싱턴은, 런던은, 시리아는, 그리고 여의도 광화문 서초동은 고담시의 희비극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이 시대는 과연 ‘조커’의 환멸을 벗어날 수 있을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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