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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리카도式’ R&D 투자의 그늘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D. Ricardo)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제창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칙 연구’(1817년)에서 영국과 포르투갈의 직물과 포도주 교역을 비교우위이론을 토대로 설명했다. 리카도는 기회비용을 비교해 영국은 모직물 생산에 특화하고 포트투갈은 와인을 생산해 서로 무역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비교우위론은 이후 200여간 국제무역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산업화 시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투자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따랐다. 외국에 비해 ‘잘 하고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선별해 돈을 투자했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보다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반도체, 휴대폰, 철강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단시간내 수출강국으로 올라섰다. 특정국가에 대한 높은 수입의존도는 눈부신 성공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리카도식 투자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관세, 쿼터제와 같은 무역장벽에 부딪혀 예전 만큼의 최대 이익이 보장되지 않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기술 자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래의 리스크를 대비해야 한다는 요구도 확산됐다. 국산화를 영영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커져갔다. 마침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나라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얼마 전 대덕연구단지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비교우위론을 차용한 연구개발투자는 분명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그것에 안주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실제로 연구 현장의 목소리는 수십년간 정치 외풍에 휘둘려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당장에 돈이 되는 기술이전, 실용화 연구,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사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원천기술, 기초연구 R&D는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였다. 연구자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에만 매달려야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구기관들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업에 끌려다니다가 수출규제의 칼날에 직면한 꼴이 됐다. 정부 주도의 R&D 대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부침에 따라 일관성을 잃었다. 봇물처럼 쏟아진 정책들은 대부분 ‘언발에 오줌누기’로 끝이 났다. 예산도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정권이나 부처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부는 다시 ‘국산화 R&D 대책’을 이야기한다.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으로 R&D 연구 시스템을 혁신헤서 기술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번에도 유행처럼 반복되는 ‘용두사미(龍頭蛇尾)’를 우려한다. 중장기적인 연구 과제 발굴과 R&D 지원방식의 혁명적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에서 정부의 과도한 개입 역시 차단하지 않으면 애먼 세금만 축낼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이 지나가면 곧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온다. 올해 가을에도 일본의 잔치를 부러워하면서 국내 기초과학의 열악한 여건을 한탄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bon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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