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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기생충’ 새로운 富의 ‘지리학’
우리 사회 최상류층인 ‘박사장’(이선균 분)에겐 어떤 죄도 잘못도 없다. 적어도 영화상으로, ‘꼭대기’에 사는 그들에겐 어떤 불법행위의 여지도, 도덕적 하자도 발견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몇 년전 임상수 감독이 내놓은 두 편의 영화 ‘하녀’ 혹은 ‘돈의 맛’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기생충’에서 IT기업 대표 박사장은 ‘돈의 맛’의 대기업 오너 윤회장(백윤식) 혹은 ‘하녀’의 젊은 기업 후계자 훈(이정재)과는 종자와 태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윤회장과 훈의 부(富)는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의 결과로 그려진다. 임 감독의 두 영화가 관심을 둔 것은 윤회장과 훈 일가의 범법ㆍ폭력ㆍ기형ㆍ변태적 행태와 습성이었다.

반면, ‘기생충’에서 박사장의 예술적 대저택, ‘남궁현자’가 설계한 현대식 건축물에는 범법이나 부패, 불륜같은 ‘적폐의 망령’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기생충’의 박사장네는 대사처럼 ‘리스펙트’해도 좋을 대상이다. 반면,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지하의 하류계층이다. 박사장네는 가정부, 기사, 과외교사를 정당하게 고용하고 정중하게 대우하지만(갑질은 없다), 하류계층은 사기, 절도, 문서위조, 무단침입 등의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 심지어 ‘밑바닥’의 그들은 서로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싸우기까지 한다. 이들 범죄는 대부분 ‘찌질한’ 형태지만 ‘생계형’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봉 감독보다 한 해 전 황금종려상을 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착안한 점 이기도 하다.

요컨대 ‘기생충’의 무대도, 재현의 대상도 지극히 ‘정상적인 자본주의’다. 이 영화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구의 지리적 분포와 관계, 공간과 자원의 배분을 우화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곧 ‘부의 지리학’이다. 그것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하는, 글로벌 수준에서의 ‘21세기 자본주의’의 개념에 더 가까이 가 닿는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에 더해, 고위경영자의 ‘슈퍼연봉’으로 상징되는 노동소득 자체의 불평등이 사회의 양극화를 강화하는, 1980년대 이후의 미국의 능력주의, 혹은 정보기술기업 시대의 ‘21세기 자본주의’말이다. ‘기생충’이 칸에서 만장일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세계적 수준에서의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기생충’의 그 누구도 끔찍한 비극을 맞을만한 원죄를 갖고 있지 않다. 결국 파국의 원인과 해결책은 박사장의 대저택이나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바깥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낭만적으로 쏟아지는 대정원과 폭우에 똥물이 솟구쳐오르는 지하 화장실, 그 너머에 말이다. 4일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LA의 노숙인 수가 1년만에 12% 증가한 6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뿐 아니라 자산 20조원의 투자가 레이 달리오, 연봉 350억원의 제이미 다이먼과 같은 세계적인 갑부들은 최근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세계의 친기업 주요 언론도 양극화의 가속화를 진단하는 기획 기사를 잇따라 게재했다. 밑바닥이 아닌 ‘꼭대기층’에서 울려나온 이러한 경고의 목소리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한 것이 아닐까. 가장 풍요한 시대의 빈곤에 대한 우화, ‘기생충’이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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