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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각국 근로시간 줄이는데…美 젊은층 ‘열일’ 자랑 왜?
한국 ‘주52시간’·유럽 ‘주30시간’…
워라밸 열풍 업고 노동시간 단축 노력 확산

美 밀레니얼 세대 ‘성공’위해 초과근무 불사
불안정한 시대 불가피한 ‘허슬문화’ 선택
일부선 ‘성취감 없는 일’ 내몰아 역효과 우려


전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워라밸’ 문화가 유행하는 가운데,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에 역행하는 ‘허슬문화’가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폴 금융가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퇴근 후 귀가를 위해 기차역으로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

야근과 초과근무 등 근로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적어도 2018년 7월 1일 이후 대한민국의 풍경은 그렇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은 ‘일’과 ‘일상’을 동일 시 했던 과거 노동계의 문화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야근과 초과 근무는 더 이상 회사생활의 ‘덕목’이 아니다.

일찍이 저녁있는 삶을 실천해 온 유럽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이마저도 길다는 여론도 나온다. 현재 독일, 네덜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28~33시간에 불과하다.

미국도 ‘주 40시간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 미국에서 최근에 초과 근무를 당연시 여기는 이른바 ‘허슬(hustle) 문화’가 젊은층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왜’라는 의문을 낳는다. ‘허슬’이 지향하는 근로문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피곤해도 일을 하라’로 요약된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SNS로 공유하면서 장시간 근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허슬 문화는 분명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전 세계적인 노동시장의 흐름에 역행한다. 왜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럼에도 ‘허슬’을 외치는가. 전문가들은 경제주체의 중심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라온 환경에 그 이유를 찾는다. 


▶세계는 지금 ‘근로시간’ 줄이기 실험 중 = 전 세계 주요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오늘날에도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긴 근로시간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은 ‘워라밸(일과 일상의 균형)’을 지향하는 일련의 노력을 든든히 뒷받침한다. 노동연구원의 ‘장시간 노동실태와 과제(2011)’ 연구보고서는 “장시간 노동체제는 노동시간의 효율적ㆍ집중적 사용을 제약해 노동생산성과 효율을 저하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유럽이다. 유럽에서도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 먼저 앞서온 독일은 1967년에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1995년에는 근무시간이 38.5시간으로 줄었다. 여기에 추가로 독일은 초과해 일한 시간만큼을 저축해서 휴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경우 지난해부터 최대 2년간 주 28시간만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스웨덴의 경우 최근 주 40시간인 근무시간을 주 30시간으로 줄이기 위한 시도가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스웨덴은 예테보리시의 스바테달렌 지역을 ‘노동의 미래에 관한 실험 지역’으로 선정하고, 주 5일 기준 하루 6시간동안만 근무토록 했다. 임금은 주 40시간과 동일하게 지급했다. 예테보리 시의회는 실험결과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졌고, 건강도 더 좋아졌다”고 밝혔다.

네덜란드는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평균 주당 40시간이던 근로시간을 주 38시간으로 줄였다. 동시에 시간제 근무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렸다. 1980년대 두 자릿수로 치솟았던 실업률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대폭 개선됐다.

우리나라도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된 지 14년 만의 일이다.

▶밀레니얼 세대, ‘워라밸’ 대신 ‘성공’ 택했다 =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허슬 문화’는 젊은층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면서도 동시에 밀레니얼 세대들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는 별개로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는 초과근무도 불사해야하는 현실의 결과물이 바로 허슬문화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버즈피드의 문화 평론가 앤 헬렌 피터슨은 ‘밀레니얼 세대는 어떻게 번아웃(정신적 소진) 세대가 됐나’라는 칼럼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는 좋은 성적을 내면 성취감을 주는 직업으로 그들에게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의미없는 일자리와 엄청난 학자금 대출뿐이었다”고 밝혔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베이비부머 하에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들은 미래에 자신들도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안고 자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대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맞이하면서 좌절됐다. 대신 경쟁은 치열해졌다. ‘불안정한’ 시대 속에 밀레니얼 세대는 불가피하게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리게됐다.

피터슨은 “미국 내 기업들이 이윤을 더 잘 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 밀레니얼 세대는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면서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는 단순히 졸업장만으로 55세까지 일하고 은퇴할 수 있는 직업을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허슬 문화’는 고용주들이 기대보다 ‘의미가 없고 성취감마저 없는’ 일에 젊은이들의 충성심을 불어넣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데이비드 스펜서 리즈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과 경제학자, 정치인들이 ‘과로’를 강요하는 문화는 16세기 유럽의 상업주의의 발흥에 기인한다”면서 “일이 갖고 있는 매력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일을 존경하게 만들기 위한 고용주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이 같은 선전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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