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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한겨울 칼바람도 잊게하는 브로드웨이 전용극장의 힘
‘위키드’ 세계관 담은 초록빛깔 무대

뮤지컬 위키드 공연장면 [브로드웨이닷컴 캡쳐]

뉴욕 브로드웨이뮤지컬을 볼 때마다 작품 전용극장이 주는 위엄을 새삼 느끼곤 한다. 뉴욕의 거센 바람을 뚫고 브로드웨이의 믿고 보는 뮤지컬 ‘위키드(Wicked)’를 봤다. 2016년 7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지만, 뉴욕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와 생동감과 함께, 무엇보다도 단 하나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극장의 위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브로드웨이뮤지컬에는 각 작품마다 내세우는 색이 있는데, ‘위키드’는 초록색이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한껏 치장된 초록빛깔은 ‘위키드’세상에 들어섰음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특히 로비의 벽과 천장 그리고 기둥의 견고한 장식들과 로비의 소품, 의자 그리고 조명 빛 하나하나는 위키드스러움을 가득 담아내며 관객을 맞이했다. 구매유혹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굿즈를 뒤로하고, ‘Wicked’가 새겨진 투명한 컵에 초록색 음료를 가득 담아 드디어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장 안 객석의 인테리어 뿐 만 아니라 막이 내려져 있는 무대 전체에 ‘위키드’의 세계관을 적극 반영하고 있었다.

‘위키드’는 소설가 그레고리의 베스트셀러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대’에 아이디어를 얻어 재구성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초록마녀에 상상과 재해석을 적극 시도한 것인데, 초록마녀 ‘엘파바’를 통해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된다. 선과 악의 진실 속에 왜곡이 나타나고, 미처 간과했던 것들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즉 극은 ‘동화적 판타지’이지만 그 내용은 진지하다. 이것이 아이ㆍ어른 그리고 가족ㆍ연인 할 것 없이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세계적으로 롱런의 흥행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위키드’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마술나라 ‘오즈’에 오기 전으로 되돌아간다. 극은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저 서쪽의 못된 마녀로만 알았던 초록마녀 엘파바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단지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며 자란 엘파바의 순수하고 선한 심성 그리고 두뇌 없는 허수아비,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엮인 안타까운 사연으로 관객의 마음을 얻는다.

작품 전용극장이 주는 위엄은 배우들의 노련함과 그들과 합을 이루는 무대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다. 자신들의 구역에 수많은 관객을 초대한 주인장다운 그들의 위풍당당한 자태는 무대를 장악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식을 줄 모르는 에너지로 모든 넘버를 완벽하고 흔들림 없이 소화해내는 ‘엘파바’와 깨알 웃음을 선사하며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인 금발마녀 ‘글린다’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능수능란하게 극을 이끌어갔다. 그런가하면 날개 달린 원숭이들과 염소인간 딜라먼드 교수는 동물의 신체적 특성을 섬세하게 살려내며 정교한 움직임과 연기력을 펼쳐내고, 갖가지 초록빛 의상을 입고 화려하고 안정되게 동작해내는 여러 배우들의 모습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적당한 무대의 높이와 크기, 전용극장이 아니면 시도하기 힘든 세트와 무대바닥의 맞춤 활용은 작품의 몰입을 더욱 높였다. 매 장면 무대 위를 미끄러지며 이동하거나 공중을 채우는 거대한 세트들, 장면마다 변하는 무대 뒷막의 전환은 앙상블의 퍼포먼스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오차 없이 움직였는데,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이 촘촘하게 엮여 들어갔다. 바닥에 뚜껑이 열리고 나타난 계단으로 등·퇴장을 하고, 커다란 침대의 등장을 위해 무대 한 가운데에 깔린 레일이 관객의 눈을 피해 사용되거나, 거대한 다리가 무대를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데도 시선을 뺏겨 집중력을 흐리거나 거슬림이 없었다. 마치 한 사람만을 위한 멋진 맞춤 정장을 제작해 놓은 듯, ‘위키드’만을 위한 맞춤 무대가 보여주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장관을 만들어내며 시선을 압도했다. ‘위키드’를 위한, ‘위키드’에 의한, ‘위키드’전용극장에서 느낀 감동은 한 겨울 뉴욕의 칼바람도 잊게 만든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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