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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서울 시민도 ‘경제특별시장’이라 부르고 싶다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설 명절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자 성어다. 박 시장은 시민들에게 설 인사를 올리면서 “많은 도전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며 “그러나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만드는 심정으로 우리 앞의 어려움 또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벼랑 끝 경제 상황에 움츠러든 시민들을 격려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길’과 ‘다리’의 고사성어다. 박 시장의 지난 7년여 재임기간 가장 피해 본 산업이 바로 사회간접자본(SOC) 연관 분야여서다. 그의 임기 초기에 도로, 교량 건설 사업들이 줄줄이 연기돼 속 태운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계획들이 시의 예산 삭감에 어그러지고, 축소되고, 늘어졌다.

월드컵대교 건설 실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2010년 착공, 2015년 개통하려던 일정이 두차례 연기돼 아직까지 공사 중이다. 공기가 늘어지면서 인근 주민들의 교통 불편 감수는 물론 되레 공사비용은 불어나고 중도에 안전 위험성만 불거졌다. 강남순환대로, 서부간선지하도로 공사 등도 서울역 고가공원 등 박 시장 역점사업에 밀려 난항을 겪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부수고 새로 짓는 식의 토목건설은 구악(舊惡) 인식을 지닌 박 시장이 문제라는 식의 질타가 해마다 국감에서 터져나왔다. 박시장 취임후 용산국제업무단지, 상암동 랜드마크타워, 은평 알파로스 복합단지가 자빠졌고, 서울역복합개발, 상암롯데몰 건 역시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시 바깥 인사에게 사업 지연 이유를 물으면 으레 ‘시의 발목잡기’, ‘무관심’이란 말들이 돌아온다. 그 결과 다국적기업을 유치못해 청년취업난 시대를 초래했으며 서울시는 글로벌 빅5도시에서 30위권밖으로 급추락했다.

이런 지난 뒷 얘기들을 구절구절 적은 이유는 박 시장이 새해 경제살리기를 위해 단단한 각오를 한 듯 보여서다.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경제를 만듭니다’란 주제를 붙인 신년사에서부터 올해 첫 해외출장지로 중국 선전과 홍콩의 창업현장을 꼽은 것까지 방점은 ‘경제’다. 그것도 ‘혁신성장’으로 좁혀진다.

시장의 이런 새 각오가 반갑긴 하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도시재생’ 등 시민 뒤에서 곰살궂게 살피는 식이 그간 박 시장의 시정 스타일이지, 앞장서서 길과 다리를 내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식의 통 큰 행정가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박 시장은 특히 신년사에서 그간 민간이 시로부터 기대하던 바램들을 쏟아냈다. “대한민국의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울부터 시작하겠다”, “시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권한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경제의 성장, 도심산업의 활성화, 혁신창업에 집중하겠다”, “관료적 접근과 지나친 규제, 현장 소통의 경시, 새 현장과 미래에 대한 몰이해를 반성해야한다” “이젠 기업을 지원하는 경제정책의 기둥을 세우고, 기업들과 끊이 없이 소통하고, 피드백하겠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정책들이 제대로 집행되는 서울시를 만들겠다” 등 다짐과 반성의 말들이다.

정말 듣기 달콤한 말들이다. 제발 말 잔치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이가 기자 뿐일까. 노파심이 고개를 드는 건 연초 시장의 ‘불쑥’ 언행이 불러온 비효율과 비합리에 우선한 결과 때문이다. 시장 말 한마디에 연말까지로 보류된 세운상가 일대 정비계획에서부터 그랬다.

혁신성장과 4차산업, ’위코노믹스(WEconomics)’…. 시장이 강조한 바 처럼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시민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는 중단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새 시대에 맞는 새 경제모델을 찾는 일은 호락호락치 않다.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다. 혁신창업과 새 경제의 토양을 다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에서의 경제 최우선 원칙과 철학,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싶다. 비효율, 방만, 늑장, 규제가 아닌 효율, 신속, 합리, 혁신, 생산적, 자율에 가까운 자세와 태도를 기대한다. 시장이 말 뿐 아니라 뼈 속까지 경제 관념으로 무장하길 기대한다.

시장은 신년사에서 “앞으로 서울시를 그냥 서울시라고 부르지 마라. 경제특별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시민 역시 박원순 시장을 ‘경제특별시장’으로 부르고 싶다.

한지숙 사회섹션 메트로팀 차장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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