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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수험생을 슬프게 하는 것들
지난해 수능고사 전날, 전국이 충격에 빠졌었다. 11월15일 오후 2시반께 경북 포항 일대에 진도 5.4 규모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그 지역 고사실 상당수에 균열이 생겼다. 1978년 지진측정이 시작된 이후 역대 두번째로 강했던 이 지진으로 인해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수능을 일주일 연기해 23일 치렀다.

개미 발자국 소리에도 끊어질지 모르는 긴장의 끈을 움켜쥔 채 1년, 혹은 2년을 인내하며 이날을 준비해왔던 응시생들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1주일’이라는 시간을 받아들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 버렸던 학생들은 다시 쓰레기통을 뒤지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졌고, 이미 배부된 시험지를 지키기 위해 경찰들은 초긴장상태에서 경계근무에 나섰다. 인명피해나 별 다른 사고없이 시험이 잘 치러졌으니 다행이지만, 지난해 수험생들은 그날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올해 수능이 치러지는 15일은 그 ‘포항 지진사태’가 생긴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천재지변이야 하늘과 자연의 뜻이니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 또 그런 일이 시험때 벌어지지 않기만 바랄 수 밖에….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 포항지진과는 전혀 다른 충격 속에 수능을 앞두고 있다.

강남의 한 명문여고에서 발생한 시험지 유출 사건 때문이다.

이 학교의 교무주임인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와 답안을 미리 알려줬고, 이 덕분에 딸들은 중하위권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로 둔갑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재학하게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에서부터, 과연 이런 일이 이 사건 하나뿐이겠느냐며 최근 수년간의 내신비리를 뒤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찰도 이번 사건이 수험생은 물론 일반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수사에 속도를 올렸고, 결국 시험지가 유출됐다는 정황과 증거를 확보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신속한 조치를 망설여 원성을 샀던 학교는 이 쌍둥이 딸의 성적을 0점처리하고 퇴학조치키로 했다.

쌍둥이 딸의 동급생과 그 부모들의 분노가 가장 크겠지만, 그 학교만의 문제일리는 없다. 교사들조차 몇가지 방법이 있는지 모른다는 ‘학종’은 이번 사건으로 신뢰를 잃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한다는 취지에 반해 ‘아는 사람만 다니는 카펫깔린 뒷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그나마 공정하다고 믿는 것이 수능과 공무원시험이다. 부모 잘둔 덕에 좋은 성적을 거저 얻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래서 수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이번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물론, 유사한 일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지 정부와 교육계는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공정한 룰 위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교육에 희망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조변석개하는 입시제도와 살인적인 학업에 만신창이가 된 수험생들이다. 그들에게 깃털 무게만큼이라도 또 다른 고통을 얹어주지는 말아야한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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