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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사라지는 시간을 찾아서
뉴스종합|2018-11-06 11:2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소설 ‘실바니의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에는 병으로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의사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선포하자 지인들이 자작 곁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의 눈에 이미 죽은 자작은 그 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키스해주던 어머니, 저녁에 그를 자리에 눕히고 그가 잠들지 못할 때면 곁을 떠나지 않고 발을 덥게 해주던 어머니, 누이가 노래 부르던 정원에서의 저녁들, 그가 장차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가정교사의 말, 그 아래서 약혼식을 올렸던 큰 보리수, 그리고 첫 약혼이 파혼되던 날도 눈앞에 보였다. 늙은 하녀에게 키스하고 처음 바이올린 음악을 듣던 생각도 났다. (…) 그는 이 모든 것이 마치 들판 쪽의 창문으로부터 저절로 눈에 들어오듯(…) 아련하게 보고 있었다.”

죽음을 선언하고 2초가 지나가기도 전에, 그의 생애의 중요한 순간들을 집약해서 본 것이다. 실제 생리현상과 조금은 다르게 묘사되었겠지만,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이는 극히 짧은 ‘순간’에 전 생애가 펼쳐지는 동시에 이 세상에서 격리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은 예술에서 매우 자주 다루는 소재인데, 이 작품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최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의 블랙홀 현상 때문이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나이와 함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 이는 처음 경험하거나 낯선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매우 집중해서 경험하기에 시간을 길게 느끼지만, 반복경험으로 뇌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시간이 사라진다고 한다. 죽음은 생을 통해 처음 마주하는 낯설고 강렬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뇌가 더없이 집중하기에 몇 초에 전 생애가 영사막처럼 지나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이와 함께 사라지는 시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더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무작정 여행을 다니기에는 건강이나 시간 그리고 경제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의 죽음의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아 피가 돌지 않는 신체 내의 생물학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 아주 짧은 ‘순간’을 인식한 영혼이 생명의 시간을 길게 늘이려고 다급하게 마술을 부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을 삶에 적용하여, 시간을 잘게 나누어 살면 어떤가. 흔히 시간을 긴 흐름으로 인식하여 그 위에 실린 내 삶도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여긴다. 시간을 나누어 인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장 생명이 10년 남았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나눠 살까. 1년 남았다면? 매일 매일을 나누어 사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초를 나누어 사는 사람이라면 더 강렬하고 긴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초를 다투어 일하자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자는 것도 아니다. 나이와 함께 쉽게 포기해버리는 시간의 힘을 제대로 작동시켜보자는 것이다. 무관심과 체념이 아니라, 누리고 있는 생명에 대한 감사를 삶 속에 포함시켜 삶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능력이라고나 할까. 자칫하면, 오늘도 우물쭈물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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