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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그냥 쓰세요…제가 책임질 일 아니니”
“(부동산 대책 기사는) 그냥 쓰세요. 원하시는 대로. 제가 책임질 일은 아니니까.”

지난 12일 부동산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김현미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A가 안되면 B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결과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주무부처 장관의 발언에 국민은 분노했다. 집값 급등에 잠을 못 잔다던 그의 심경마저 편향된 정책처럼 지나치게 단순화한걸까.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경제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론이다. ‘변수가 없다면’ 또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앨프리드 마셜이 고안했다. 논란은 진행형이다. 제한된 상수만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 탓이다.

실제 변수는 차고 넘친다. ‘모든 조건이 같다’는 경제학적인 접근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세테리스 파리부스’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적응했다. 일자리 대책부터 금리, 세금, 복지와 관련된 청사진 등 정부가 제시하는 숫자가 대표적이다. 보여주기식 관행의 연장선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결정권자를 향해 질타와 비난이 쏟아진다.

그간 여덟 번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규제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정부는 서둘러 후속 카드를 꺼냈다. 앞으로 꺼낼 패까지 모두 노출됐지만, 정부는 ‘주머니 속 카드’는 남았다며 더 강력한 대책을 예고했다. 문제는 설계의 단순함이다. 거래는 줄고 있는데 호가는 오르는, 펀더멘털보다 심리가 집값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핀셋의 타깃이 잘못됐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자산가들의 인내심엔 한계가 없었다. 결국 한 곳을 누르면 한 곳이 튀는 풍선효과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공급 확대 정책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까. 수도권 물량은 충분하다던 정부의 태세 전환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김동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로 소방관을 자처한 가운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수행능력 시험대로 비치기까지 한다.

현상을 단순하게 보는 것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의 차이는 크다. 소방수들의 난입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대책은 누군가에겐 버거운 수식에 불과하다. 하반기 이후 규제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도 같은 맥락이다.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더 아득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집값 급등으로 인한 박탈감을 호소하는 글이 잇따르는 이유다. “아파트는 많은데 왜 우리 집은 없을까.” 십수 년째 반복되는 누군가의 한숨을 외면하기엔 삶의 무게가 버거운 이들이 너무도 많다.

‘세테리스 파리부스’ 이론을 도입한 앨프리드 마셜이 남긴 또 다른 명언이 있다.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 런던의 빈민굴에 가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오지 말라는 그의 사상이 담긴 말이다. 정책 입안자들의 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하다.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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