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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문제는 다양성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쏟아내는 온갖 비현실적인 공약들, 집권 후 그것을 추진하느라 저지르는 무리수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선거의 순기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규범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정책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이사 때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이치와도 같다.

요즘 대학에서도 정책세미나가 자주 열린다. 최근 서울대 정책지식포럼의 ‘새 정부의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다룬 ‘사법정책’ 토론회가 그 중 하나다. 법학자들로 구성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검찰의 불공정한 법집행을 문제로 지적했다. 군대내 비공식집단이던 ‘하나회’ 해체 이후, 검찰이 한국 최강의 권력집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봤다. ‘민정수석-법무장관-검찰총장’의 연결고리를 축으로 검찰은 사실상 하나의 “준정당”으로서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사전방지는커녕, 사건이 불거진 이후조차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결국 대통령 탄핵을 가져왔다고 봤다.

이와 같은 진단을 토대로 발제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사장 직선제’ 제도화를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사법체계의 ‘정치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더 ‘정치화’하자는 주장인 셈이다. 독일법 전공자인 발제자로부터 지고한 법 정신과 이상이 무엇이고, 일반이익의 수호자로서 법관들이 원칙에 따라 보편적으로 법을 집행하도록 독려하고 교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한국정치는 정치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여차하면 법소송으로 끌고 가는 수준임을 모르는가 싶었다. 다만, 발제자의 대안이 우리사회에 결핍된 다양성 갈구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해 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조생태계 내에 형성된 권력독점으로 인해 빚어지는 역기능을 해소하려면, 구성요소간의 다양성과 균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권력기관간의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기하는 미국식 조직다원주의 방식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 서울대 교육정책포럼에서도 유사한 문제제기와 처방이 나왔다. 교육문제 중에서도 사교육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발제자는 오늘날 한국에서 연간 약 100조 원이 교육비로 쓰이는데, 그 중 약 35조 원이 사교육비라고 분석했다. “4대강 사업에 22조원이 들어갔지만, 4년간의 비용 모두를 합한 액수”임을 감안하면, 사교육비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는 부연설명이 따랐다. 사교육 문제해결을 위해 역대 정부들이 ‘학교평준화’, ‘공교육내실화’, ‘사교육규제’, ‘사교육제공’ 등의 정책을 골고루 시도해 봤지만, 모두 이런 저런 한계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결국 고교교육 및 대학입시의 다양화를 포함하여 교육생태계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늘의 한국은 더 이상 한두 가지 가치를 지향하면서 획일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하향식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은, ‘복잡성’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정책문제들도 점점 더 ‘난해한’ 문제로 바뀌고 있다. ‘저출산’ 문제 등에서 보듯이, 뉴턴식의 단선적 인과관계 분석에 의한 진단이 쉽지 않고, 설령 대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구성원 간에 합의가 쉽지 않은 문제들이 그것이다. 이처럼 난해한 문제 일수록 관련 생태계의 구성요소를 다양화하고 균형을 기함으로써, 그들 간의 공진화가 스스로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리더십이 필요해진다. 가는 곳마다 듣기 좋은 공약을 발표해야하는 대선 후보들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바보야! 문제는 다양성이야”라고 외칠 후보를 찾아내야만 한다. 또 하나의 ‘실패한 정부’를 갖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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