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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국가비상사태’ 만드는 ‘국회비상사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국회법 85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은 천재지변이나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발생시다. 헌법 76조는 ‘내우ㆍ외환ㆍ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섬뜩한 이 말들이 요새 국회에선 ‘일상어’가 됐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회의장에 경제ㆍ노동 관련법 개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거부했고, 급기야 새누리당 일각에서 대통령의 ‘긴급명령권 발동’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상황이 됐다. 여야 합의 가능성은 단 1%의 가능성도 없어보이고, 국회 기능은 완전히 마비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비상사태’인가. 두 명의 헌법학자에 물었다. 한 명은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긴급명령으로 했는데, 지금이 보기 나름으로는 더 위기상황”이라며 “못할 것도 없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한명은 “현재 상황이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비상사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좀 의아스럽다”고 했다.

현재 상황을 법이 규정한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있는 지는 정치권 뿐 아니라 학자들조차도 엇갈리지만 위기의 본질은 ‘국가비상사태’가 거론될만큼 국내외 경제여건이 최악이고, 이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생을 앞장서서 헤아리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삼권 중 한 축이 붕괴되는 ‘국회비상사태’가 ‘국가비상사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청와대와 국회의장이 각을 세우고, 여와 야는 국회를 비워둔 채 장외에서 설전만 거듭하고 있다. 정치는 상대적이지만 야당의 책임이 적지 않다. 지난 2일 선거구 획정과 주요 법안 처리에 대해 여당과 합의를 해놓고도 여전히 ‘악법’ 프레임에 휩싸여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야당 내부에서도 반성이 터져 나왔다.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1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낙인을 찍고 심사 자체를 하지 않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하려면 왜 반대하는지 분명히 각을 세우고, 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해소할 수 있다면 적극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그동안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재벌특혜법‘으로 낙인찍어 놓고 아예 내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노동개혁법안은 대안없이 반대만 했을 뿐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내홍상태에 휩싸이자 야당 의원들은 국회 5개 상임위원회에 대부분 불참해 파행을 낳기도 했다. 관심의 대부분은 어느쪽에 줄을 서야 하느냐에 쏠려있는 느낌이다.

무기력하기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을 상대로 제대로 된 설득이나 논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꼴이다. 연일 쏟아지는 청와대발 ‘무능한 국회’라는 비난과 월권논란까지 일고 있는 ‘국회의장 직권상정 압박’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삼권 분립의 원칙은 입법, 사법, 행정부가 각각 제기능을 다했을 때 지켜진다. 야당은 선후가 뭔지 분별해야 한다. 지금은 당권투쟁이 아니라 민생을 위한 법안 처리가 중요하다. 여당과 청와대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니면 내년 20대 국회는 ‘국가비상사태’의 원죄를 안고 출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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