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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美]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누드
① 일본 판화의 대가 가츠시카 호쿠사이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한 사진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낯익은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멀리 눈쌓인 후지산이 보이는 가운데 성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담은 채색판화, 바로 호쿠사이의 그 유명한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였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에이, 저거 짝퉁이에요. 진짜 걸작을 보여줄게요”

작가가 책을 펼쳐 보여준 것은 호쿠사이의 누드화였습니다. 정확히는, 여인과 문어의 성애 장면을 다룬 그림이었죠. ‘어부 아내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누드라고.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ㆍ1760-1849). 일본 근세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유럽 인상주의 미술을 태동시킨 ‘유키요에(浮世繪ㆍ1603~1867년 일본 에도시대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의 대가입니다.


최근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가 3억달러에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 이전 기록은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었죠. 모두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들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세계 미술경매 시장에서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을 호가하며 비싸게 팔립니다. 프랑스 인상파 그림들은 국내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인상파 그림들을 앞다퉈 들여오며 블럭버스터급 전시를 열기도 했죠.

인상파 미술을 서양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상파 미술이 19세기 일본의 통속적인 목판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들여온 일본 도자기에 싸구려 포장지가 감싸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포장지에 우키요에가 그려져 있었고, 모네는 이것을 발견하게 되죠. 이후 모네, 마네, 고갱 등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본 회화의 평면성에 푹 빠지게 됩니다.

다시 어부 아내의 꿈으로 돌아가봅니다. 거대한 문어가 여인의 몸을 뒤덮은 채 아랫도리에 촉수를 대고 빨고 있습니다. 작은 문어 한마리는 여인의 입을 빨고 있죠. 여인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해, 마치 시신이 되기 직전의 모습으로 절정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미지를 텍스트화하는 자체도 민망할 정도의 이 그림 속 절정의 순간을 프랑스의 작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위스망스(Joris Karl Huysmans)는 ‘히스테리성 기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호쿠사이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 그림책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프랑수아 플라스의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Le vieux fou de dessin)’입니다. 말 그대로 그림에 미친 노인, 호쿠사이가 쌀 과자 파는 소년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들려주며 그 소년을 예술의 길로 안내하는 내용입니다. 판화 제작 과정이 그림과 함께 소개돼 흥미를 끕니다.

죽기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일생동안 3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호쿠사이. 새로운 미술 장르에 몰입할 때마다 이름을 바꾼 탓에 서른 번 넘게 개명을 했다거나, 아흔 세번 넘게 집을 옮겼다는 기이한 행적에 대한 이야기도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호쿠사이는 ‘천박한 환쟁이’라는 세간의 비웃음도 개의치 않고 예술적 진화를 거듭하며 일본은 물론 서구 미술사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놀라운 화가임에는 분명합니다.

그가 70세 무렵에 남긴 화집 ‘후카쿠 100경’에 언급된 내용이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섯 살에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가 되어 쉰 살에 명성을 얻었지만, 일흔 살 전에 했던 모든 것은 쓸모없는 지시었다. 일흔세 살에야 날짐승과 들짐승, 벌레와 물고기의 구조를 파악했고, 식물이 자라는 이치를 이해했다. 계속 노력하면 여든여섯 살에는 그런 것들을 더 잘 파악하고, 아흔 살에는 자연의 핵심을 꿰뚫고, 백살에는 신묘하게 통찰하고, 백서른 살, 백마흔 살에는 내가 그린 점 하나,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하늘이 내게 장수를 주셔서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늙은이.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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