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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그들의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
“제 나이대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이 롤모델입니다. 그렇지만, ‘입봉’(‘데뷔’를 이르는 영화ㆍ방송계 은어)한 감독들은 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사당동의 한 극장에서는 문병곤 감독의 칸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 수상 기념 시사회와 축하행사가 열렸다. 문 감독의 영화 제작을 지원한 신영균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자리였다. 여기서 문 감독은 수상작인 ‘세이프’(Safe)에 대해 “장편 상업 영화를 하고 싶어서 제대로 된 3막 구조에 3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고, 플롯(plot)의 포인트가 2가지 이상이며 명백한 갈등과 명쾌한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단편으로 찍고자 했다”며 “그래야 나중에 저와 작업할 사람들에게 장단점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전공한 서른 살,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 갓 단편 2편을 연출한 ‘신인 감독’의 패기와 야심, 그리고 ‘고투’를 드러낸 말이었다. 매년 대학의 영화학과와 각종 영화관련 교육 기관에서 쏟아지는 수백 수천여명의 영화감독 지망생 중에서 영화사와 투자자의 ‘낙점’을 받아 장편 상업 영화로 데뷔한다는 것이 얼마나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자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인 김동호는 축하와 기대의 말을 전한 뒤 “특히 나같은 ‘신인 감독’한테는 큰 힘이 된다”며 웃으며 덧붙였다. 김동호 원장은 창립부터 14년간 역임했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지난해 단편 영화 ‘주리’로 감독에 데뷔했다. 그의 나이 올해 76세다.

그런가 하면, 오는 5일엔 배우 유지태가 연출한 첫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가 개봉한다. 남편의 폭력과 시가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동남아 이주여성과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청년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린 이 작품은 ‘영화작가’로서의 유지태의 야심과 재능, 역량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카메라 렌즈 속 세상,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또 다른 도전에 나선 영화감독도 있다. 십수년간 ‘청년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이끌어온 중견제작자 겸 영화감독인 김조광수다. 이미 수년전 동성애자임을 공개하고 활동해온 그는 오는 9월 동성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조광수 감독은 제작자로선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조선명탐정’ 등을 만들었고, 영화감독으로선 ‘두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친구사이?’ 등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를 찍었다.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대생이 가불금을 갚기 위해 사람들이 환전을 요구하는 돈의 일부를 몰래 빼돌리다가 발각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느날 갑자기 위기를 맞은 주인공이 안전한(safe) 공간으로 도망친다고 간 곳이 ‘금고’(safe)다.

그렇듯 많은 이들이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안전한 길’을 따라가다 결국은 막다른 길에 부딪치고 만다. 문병곤과 김동호, 유지태, 김조광수 등 영화인들의 도전이 아름답고 유쾌한 이유는 편하고 안전한 길 대신 ‘가고 싶은 길’ 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편견과 싸우고 불편함을 무릅써야 할지라도 말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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